최저임금제 논란

 기사 쓰기를 하다가 곱씹어 볼 내용이 있어 정리합니다. 최저임금제 관련된 내용입니다.

  “정부는 재계가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연령별ㆍ지역별 최저임금제 자동화 방안도 이번 대책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지난해 말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이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나이가 많거나 산업시설이 부족한 지방의 경우 현재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최저임금을 줄 수 있게 하고, 현재 최저임금의 10%를 깎아 적용하고 있는 수습 근로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릴 수 있다.....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는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최저생계를 위한 유일한 제도로 경제가 어려울 때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도입을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 국민일보 6월 18일 12면

  김성조 의원은 현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입니다. 작년에 자신이 추진한 법안이니 통과 의지가 강하겠지요. 현재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천원입니다. 8시간 근무면 32,000원, 주5일 근무로 5주 한달을 잡으면 80만원이 나옵니다. 참 많은 액수죠? 야근수당 및 각종 상여금은 왜 계산에 넣지 않냐구요? 최저임금 간신히 지켜주는 곳이라면, 그런 수당이 있을 리 없겠지요.


  또 그놈의 경제 타령입니다. 파업, 임금 인상 요구는 경제가 호황이든 불황이든 자제해야 합니다. 호황일 땐 더 불을 활활 지피기 위해, 불황일 땐 모두 다 허리띠를 졸라매기 위해. 참 뻔한 레퍼토리지 않습니까? 삭감 측 의견입니다.


 “하지만 사용자측은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속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적절치 않고 최저임금을 올리게 되면 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인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은 10% 이상 꾸준히 올랐다. 현재 상황에서는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올려서 고용을 감소시키기보다는 저임금이라도 고용을 유지하는 쪽이 낫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 서울 신문 6월 18일자 4면

  몇 년간 10% 올랐다는 건 뻥입니다. 07년 3480원에서 08년 3770원(8.3% 인상), 09년  4000원(6.1% 인상)입니다. 설사 최저임금이 10% 약간 못미치게 과하게(?) 올랐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 증가,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임금 하락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심한 말로, 저분 자제분이 계시다면 “시급 4천원 받고 일 시켜 결혼해서 애까지 낳게 시켜보세요. 그것도 둘이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저임금을 정하기 전에 먼저, 각 사업장들이 최저임금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아파트 경비원 할아버지, 새벽 버스에 많은 청소부 아줌마들은 한 달 일해야 기껏 6~70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당신들 많고도 쓸 분들이 많다. 알아서 해라.’하니깐 용돈벌이라도 할까 해서 그런 일을 하시는 거지요. 편의점에서 알바 뛰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동네는 시급 3천~3천5백원을 주더군요. 애들이 “최저임금 이하다.”라고 똑똑하게(?) 항의할지라도 사장님은 “너희들 말고 쓸 애들 많다.”라고 말하면 그만 일겁니다.

 
  연령별로 차등화할 경우 20~50대의 중간연령을 제외한 10대 및 60대 이상 고령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보겠지요. ‘산업화의 역군들’이라고 치켜세울 땐 언제고 노인분들 시급까지 깎으려는, 삭막한 사회가 되었을까요? 88만원 세대라고 20대의 희생을 강요하더니, 그 폭이 더 넓어졌습니다. 하긴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라고, 나머지 세대들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친 않을 겁니다.

 
  지역별로 차등화할 경우 어떨까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그나마 최저임금을 제대로 지켜 시급 4천원을 준다고 가정하고, 지방 어느 군 단위에서는 10%를 깎아 3천8백원을 준다고 가정해봅시다. 한달이면 서울은 80만원, 지방 어느 군은 72만원이 되겠네요. 지역간 격차는 더 커질 것이고, 가뜩이나 공동화된 지방에서 일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없을 겁니다. 이들이 6~70년대처럼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몰리면, 임금노동자 사이의 경쟁도 더 격화되어 전체 임금 수준이 더 하락할 가능성은 커집니다.


   가까운 몇 년 안, 우리네 가정은 이렇게 될지 모릅니다. 한달 4~50만원을 받고 아파트 경비일을 하는 할아버지, 명퇴가 언제일지 모르고 퇴직 후엔 마땅한 기술이 없어 자영업을 하셔야 되는 아버지, 푼돈이라도 모의고자 우유배달을 해야 하는 어머니, 3개월, 6개월짜리 아르바이트 인턴을 전전하다 간신히 비정규직을 구한 오빠, 일 년 천만 원을 내면서 다닌 대학을 졸업해도 희망을 찾을 것 같지 않은 동생... 너무 과격한(?) 상상인가요?

by 상상력 | 2009/06/21 20:08 | 트랙백(1) | 덧글(0)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책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드라마 ‘이산’과 ‘대왕 세종’ 등 사극을 즐겨보는데, 안 그래도 깔끔하게 조선왕조사를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단편적인 인물 지식과 시대 배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이해에 어려움이 켰기 때문이다.
김경수 씨의 ‘조선왕조사’는 쉽게 쓰인 책이다. 비슷한 류의 책으로 이근호 씨의 ‘조선왕조사 이야기’가 있는데 이 책 역시 대체로 쉽게 쓰인 편임에도 불구하고, 김경수 씨의 책이 훨씬 더 잘 읽히는 편이다. 짧은 문장과 빠른 흐름, 쉬운 문체 때문에 책이 더 쉽게 읽히는 듯하다.
형제는 물론 부모의 정(情)까지 왕권을 쟁탈하기 위해 기꺼이 칼을 드는 냉혹함에 몸서리를 쳤고, 조선 후기 들어 ‘상복을 몇 년 입을 것인가’의 사소한 문제로 시작된 붕당 정치가 한심해보였다. 결과는 국력이 쇠한 틈을 타 국권을 강탈한 일제의 지배로 이어졌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그 민족에는 미래가 없다고 하던데 이런 연유로 결국 조선은 몰락한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에 성군(聖君)과 탁월한 대신들이 등장했던 역사도 있었다. 칼 막스가 ‘루이 보나파르뜨의 브뤼메르 18일’이란 책의 서문에서 “역사는 한 번의 비극과 한 번의 희극이 반복된다.”라고 했던데 아쉽게도 조선은 비극으로 끝을 내렸다.
흔히들 조선왕조하면 왕의 역사로만 이해되지만, 왕 밑의 대신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경우도 많다. 조선 시대의 몇몇 반정(反正)은 폭악하거나 방향이 잘못된 왕을 상대로 대신들이 목숨을 걸고 힘을 합쳐 일으킨 것이었다. 삼봉 정도전이 ‘경국대전’에서 말했듯, 조선은 왕이 중심이 되어 전횡을 휘두르는 왕도(王道)의 나라가 아니라, 덕 있는 왕과 능력 있는 대신 들이 힘을 모아 슬기롭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룻밤에 조선왕조 5백년사를 살펴봤다. 말 그대로 하룻밤이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내친김에 조선왕조사와 관련된 책을 세 권 더 빌려서 보고 있는 중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니 일본의 망언이니 해서 역사 의식이 고취되는 것 같지만, 대학들은 수능에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사회적으로도 영어 하나만 잘 하면 모든 교양과 소양이 다 갖추어진 것처럼 얘기한다. 아쉬운 일이다.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그렇게나 많은데 말이다.

by 상상력 | 2008/03/24 01:47 | 트랙백 | 덧글(0)

일본지식채널 - 짧고 아쉽다.



작년 7월 경에 일본에 다녀왔다. 첫 인상은 자동차가 반대로 다니는 것만 제외하고, 놀랍도록 우리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한쪽은 2차대전 후, 한쪽은 한국 전쟁 후에 힘겨운 재건 과정을 통해 살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개인보다는 회사와 같은 집단을 중요시하고, 양국 국민 모두 근면하기로 순위를 매기자면 우월을 가리기도 어렵다. 다만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더 좁은 느낌이다. 우리의 동대문 쇼핑 타운과 비슷한 도쿄의 쇼핑 센터를 갔었는데 정말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다. 일본 사람들이 사는 집도 마찬가지고, 앙증맞은 경차도 한국에 비해 훨씬 더 눈에 많이 띈다. 일본인들이 특히 예의에 민감한 것은, 이렇듯 가깝고 좁은 거리에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생활 조건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런 조건은 또 어떤 문화를 낳았을까?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일본지식채널’을 통해 좀 더 가깝고 가까워진 느낌이다. 기자 특유의 압축적이고 간결한 문장과 재미있는 소재들이 덧붙여져 한 편의 일본 문화기라고 이름 붙이는데 어색함이 없다. 한 꼭지에 붙여있는 이야기들도 짧은 편이라 책장도 술술 넘어간다. 한국과 일본 문화의 소통을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도 돋보인다. 재일 한국인 가수의 역할과 과거 한국과 일본 사이에 문화 교류 역사를 통해 한ㆍ일 간 교차점을 찾고자 한 시도가 그것들이다. 이외에 평소 우리가 일본에 대해 궁금했던 사안들도 쉽사리 찾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 가볍지만 풍부하게 일본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아쉬운 점도 몇 가지 남는다. 책의 꼭지들이 짧아서 지치지 않으나, 뭔가 알 듯 하면 끝나는 것도 아쉽다. 좀 더 깊은 내용을 다루지 못해 만족스럽지 못한 독자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편집 상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다. 사진 밑에 설명글을 다는 것이 시선을 편하게 할 텐데 굳이 다음 페이지나 뒤페이지에 작은 설명글을 단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시선도 피곤하고 흡입력도 떨어진다.

by 상상력 | 2008/02/26 18:34 | 트랙백 | 덧글(2)

좋지만 힘든 일



토머스 기타의 ‘생각의 오류’는 고정관념을 깨고자 만들어진 책 같다. 저자는 크게 여섯 줄기로 우리가 종종 저지르는 생각의 오류를 지적한다. 1.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신뢰하는 속성, 2. 자신의 믿음을 확신시켜주는 증거들에만 집중하는 것(심리학에서 ‘선택적 지각’으로 설명되는 것), 3. 삶에는 운과 우연도 있는 것인데 지나치게 원인을 찾으려는 속성, 4. 지나친 오감을 확신한 나머지 부정확한 인식으로 생기는 오류, 5.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오류, 6.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의 기억을 변형시키고 자신의 주관에 따라 기억이 변질되는 것 등이다.
동어반복적인 말이 많고, 미국 사례들이 많아 책장이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가 제기하는 여러 주장들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어야 하는 학문 분야의 연구자라면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의외로 간결하다. 책에 제시된 기준에 따라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해보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허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매번 객관적인 조건으로 상황을 판단하기에는 불안정한 인간으로써 소위 ‘기회비용’이 많이 든다.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불량률 통계를 인용하고, 간단한 판단을 내릴 때에도 여러 사례를 비교ㆍ분석 하면서 회의하고 의심만 한다면, 그것만큼 세상 피곤하게 사는 법이 없다. 정보의 홍수(overloading)에 빠져 재빨리 판단해야 할 일도 제쳐두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이런 것은 더욱 힘에 부치는 일이다. 과학자들만큼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곳에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기껏 얻는 양질(?)의 정보라고는 인터넷, 뉴스와 같은 매스 미디어가 전부다. 저자도 책 곳곳에서 지적했듯 이런 미디어가 갖는 위험성은 굳이 크게 언급할 필요도 없다.
특히 통계는 양날의 칼이다. 이야기보다 통계 수치에 의존하는 것이 좀 더 ‘과학적’으로 보일 뿐, 마크 트웨인의 멘트를 인용했듯 통계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대선 여론 조사의 경우 천 명 대상 중 응답률은 20%정도에 불과하다. 같은 기관에서 시행한 설문 조사 결과도 문항 조작에 따라 얼마든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충분한 표본을 확보했는지, 적절한 문항으로 설문했는지, 표본의 보편성은 확보되었는지 하나하나 따지면서 살기에는, 이미 세상일은 충분히 복잡하고 다른 일에 힘을 쏟기에도 바쁘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힘든 말이다. 저자가 학자의 입장이 아니라, 좀 더 일반적인 입장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by 상상력 | 2008/01/23 18:52 | 트랙백 | 덧글(0)

지정학은 위험하다 -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지도가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지정학(地政學)은 위험하다. 이건 운명과 같은 거다. 부잣집에 태어났으니 부자가 되고,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니 가난한 사람이 될 거라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자원이 많은 나라는 강대국이 되고,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나라는 외세의 침입이 잦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지리적 이유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가까운 일본을 보자. 화산과 지진으로 불안한 지형에 별 다른 자원도 없는 나라가 세계의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건 어떤 이유일까?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원이 풍부한 북부 아프리카는 왜 미국처럼 선진국이 되지 못했는가? 정치학에서는 근대화, 즉 국민 소득의 향상이 민주주의를 가져온다고 언급되지만, 사우디처럼 석유 자원이 풍부하고 국민 소득이 월등히 높은 나라가 아직까지 왕정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은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큰 판형에 컬러풀한 지도가 세상의 많은 이치를 설명해준다. ‘지도가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숫자와 과학에 의존한 지리학도 강대국의 입김에 따라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건 역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사실 유럽을 중심에 놓은 것이며, 동아시아의 역사는 근세 이후에나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물론 유럽 열강에 의해 수탈당하고 저항하는 모습이 다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국의 자원, 인종, 종교에 따라 세계지도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특히 저자가 독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 입장에서 편치 않다. (그나마 객관적인) 프랑스인이 볼 때도 독도는 일본과 한국의 분쟁 지역처럼 묘사되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다. 이 현실이 언제 지도를 새로 그릴지 모른다. 책 후반부에 나온 것처럼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식량 및 환경 등이 새로 지도를 그리게 할 것이다.
세계 곳곳을 잘 짜인 지도로 재미있게 여행한 느낌은 들지만, 그 이후에 텁텁하게 남는 불안감은 무엇일까? 대륙과 해양 세력 간 요충지에 자원도 없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불안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고단했던 우리 역사처럼, 앞으로도 이런 불안을 끊임없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숙명 때문인가?

by 상상력 | 2007/12/24 13:1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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